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사 상륙작전 (문단 편집) === 북한군의 반격 === 앞서 이야기했듯이 북한군 제2군단은 장사 상륙작전이 전개될 당시 이미 예봉이 꺾인 상황이었다. 9월 6일에 북한군 제5사단이 [[형산강]] 방어선을 돌파하여 경주 및 영일비행장 방면으로 밀어붙일 때가 공세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한국군 제3사단은 미군 제24사단 병력을 지원받아 반격에 나서서 14일까지 다시 북한군을 [[형산강]] 북쪽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한다. 북한군 제2군단은 그간의 거듭된 공격으로 주 전력을 대거 소진해버려서, 이 시점에는 [[형산강]] 북안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역습에 대비하며 재정비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 장사동에 상륙작전이 전개되었으니 북한군은 크게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장사동은 제2군단의 주 보급로 중의 하나인 [[7번 국도]] 도상에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방치할 경우 보급 곤란은 물론 역포위되어 섬멸될 위험도 있었다. 그러나 이 교두보를 제거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할 수도 없었다. 9월 15일 [[인천 상륙작전]]에 맞추어 낙동강 전선에 포진한 한국군은 전면 반격에 돌입하였고, [[형산강]] 전선에서도 9월 16일부터 한국군 제3사단은 [[형산강]]을 도하하여 포항을 탈환하려는 공격을 거듭 시도했기 때문이다. 북한군 측에서는 초기에 한국군의 상륙 규모를 약 2개 연대로 과대평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평양방송에서 한국군 2개 연대가 동해상에 상륙했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제5사단 예비대인 제12연대는 물론 심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던 전선에서 병력을 차출하여 장사동으로 급파한다. 정확한 동원 부대는 불분명하나 동일한 규모로 2개 연대급의 병력을 반격부대로 차출했던 것 같다. 여기에 이미 상당수가 파괴되어 몇 대 남지도 않은 귀중한 [[T-34-76|T-34]] 전차 4대까지 급파했다고 전해진다. 반격은 상륙 2일 후인 17일 아침부터 본격화된다. 9월 17일 06시, 북한군은 전차의 지원을 받으며 3중대(제32연대로 위장)가 방어하고 있던 218고지 정면에 공격을 집중했다. 그러나 이곳은 방어측에 유리한 지형이고, 유격대원들이 예상을 뛰어넘어 완강히 저항하자 북한군은 공격 40여 분 만에 일단 퇴각하였다. 북한군은 다시 포격을 재개하고 1중대가 방어하는 125고지 방향으로 공격방향을 전환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또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북한군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또 다시 퇴각한다. 이명흠은 북한군의 증원이 예사롭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고, 1중대와 3중대 병력을 200고지로 철수시키고 대대 지휘소를 좌초된 문산호로 옮겼다. 18일이 되자 북한군은 다시 05시 경 220고지 방향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북한군의 증원병력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고, 반면 제1 유격대대는 탄약이 점점 고갈되고 있었기 때문에 방어선을 고수하기는 더욱 더 어려워졌다. 결국 이명흠은 협의된 대로 19일 아침에 철수작전을 진행하기 위해 미 해군 95.2기동전단의 지원 포격 속에 단계적으로 해안으로 병력을 퇴각시켰다. 북한군은 미 해군의 함포사격 때문에 9월 18일에 제1 유격대대를 곧장 추격, 섬멸할 수는 없었으나 점점 더 해안 방향으로 압박을 가하며 최후의 일격을 가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